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46



우등생의 오답노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위 공부 좀 하는 우등생들은 모두들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틀린 문제를 기록하거나 복사해서 붙인 후, 틀린 이유를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다시금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꼭 우등생이 아니더라도 선생들은 늘 가르침 속에 이러한 오답노트의 신성함을 강요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여러 학생들이 오답노트를 만들려 시도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해버렸던 기억이 많다. 많은 학생들이 그것을 포기하는 이유, 그리고 과연 우등생들은 끝까지 저 임무를 완수했을까 의문이 들게 하는 그것의 한계점은 바로 ‘하면 좋은지는 알겠는데 또 그게 그렇게 좋은지도 모르겠고, 사실 귀찮고 무엇보다 막막하다.’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의심의 여지없는 엘리트다. 승부욕이 강하고 의지도 강해서 무엇을 해내고자 하면 물러섬 없이 해내며 살아온 듯 보인다. 그렇게 그가 이뤄놓은 삶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삶처럼 보인다. 대기업 건축회사, 나이보다 빠른 승진, 초고급 빌라, 중형세단, 아름다운 아내, 똑똑한 아이.. 물론 그는 자신과 관련한 일에 있어서는 습관적으로 빠르게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그것을 수정, 보완하며 앞(자신이 생각하는 정답)만을 보고 달려왔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런 그에게 오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긴다. 자신이 6년 동안 키운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뒤바뀐 친자, 류세이의 존재는 료타 뿐 아니라 집안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다. 그때부터 료타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히 우등생에 준하는 효율적인 반응을 보인다. 일단 확실한 오답체크가 우선한다. “역시 그랬던 거군.” 그가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던진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처럼 들려도 이 말 속에는 케이타라는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었다는 확신이 들어있다. 해서 이 말은 두고두고 부인인 미도리(오노 마치코)에게 상처로 남는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친자불일치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요즘엔 유전자 검사라는 것이 대단한 일도 아닌 게 되었지만,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은 이상은 신뢰를 무너트리는 의심의 실체를 제안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케이타의 사립 초등학교 면접시험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들 성격의 장단점을 묻는 질문에 료타는 자신의 아들이 엄마를 닮았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초반이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후에 료타의 태도를 종합해보면 그가 끊임없이 케이타에 대해 의심하며 판단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댔던 것으로 드러난다. 한마디로 료타는 오답이라고 의심이 되는 번호(케이타) 위에서 계속 펜대를 굴리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도 다른 번호(다른 누군가, 친자)에 마킹하는 최종적 판단은 유보시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의심이 실체가 되었다. 케이타는 친자가 아니다. 때문에 료타는 “역시 그랬던 거군”이라는 말을 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케이타가 오답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면 유전자 검사로 확실히 입증된 자신의 친자, 류세이는 어떠한가. 정답에 가까운가. 료타는 이러한 혼란의 상황 속에서도 엄격한 보수성과 원칙성을 유지한다. 케이타에게 들이댔던 판단의 잣대를 그대로 류세이에게도 들이댄다. 류세이보다도 그가 속한 현재의 가정에 우선한다. 료타의 배경과는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류세이의 집. 소박하고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류세이는 아버지인 유다이(릴리 프랭키)와 어미니인 유카리(마키 요코)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행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소박하고 가난하지만’과 같은 수식어로 설명 가능한 집안 자체가 료타에게는 이미 오답이다. 때문에 류세이에 대한 판단 이전에 그는 자신이 가져야하는 답(류세이)이 있지 말아야 할 곳으로 부터 분리시키려 애쓴다. 물론 그 욕심을 다른 이들(류세이의 부모님과 아내 미도리)에게 관철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태껏 자신이 욕망해온 것을 갖지 못해본 적 없는 료타로서는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마저도 번거롭게만 느껴졌을 터. 하지만 이는 온전히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기에 아무리 료타라도 조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료타에게는 이미 어느 정도의 답에 가까운 해결책이 나와 있는 상태다. 케이타와 류세이 모두를 자신이 키우는 것을 말이다. 료타의 욕망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류세이의 부모님에게는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벌써 1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료타는 해내고 가져야 하는 것의 장애물을 만나면 그것을 제거하고 무조건 앞으로 가야하는 사람이다. 안되면 되게 하는 결국에는 안 되는 것이 없는 사람. 그런 그에게 류세이의 부모님이 커다란 장애물인 이유는 바로 본인들이 장애물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는 것에 있다. 료타에게 삶은 하나의 링이고 이기는 것, 지는 것, 두 가지 밖에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일과 같은 복잡 미묘한 사안은 일단은 일생일대의 승부다. 승부가 아니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 그다. 그런데 류세이의 아버지라는 사람, 유다이는 전혀 승부에 관심이 없다. 돈에 관심이 있는 듯 보이면서도 조목조목 아버지 됨에 대한 주정 같은 말들로 료타의 속을 긁는다. 그렇게 그들과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료타는 오답이라 확신했던 것들에 이상하리만큼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류세이의 가정을 보면서 료타는 처음으로 ‘내가 만들어 놓은 가정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 역할을 잘 해온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한다. 그때쯤 평생을 합리화해본 적 없었을 승부에서 구차하게 욕망이 틈을 비집고 나와 버린다. 둘 다 자신이 대려다 키우겠다는 말을 말이다.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에서라면 싸대기를 때리고도 온갖 손에 잡히는 것을 다 던지고도 모자랄 유다이는 괘씸하다는 듯 료타에게 꿀밤을 한 대 때릴 뿐이다. 그리고 “한번도 저본 적 없는 것들은 모른다”는 한마디의 일침.



 이쯤 되면 료타가 정답으로 가는 길에 심한 강박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영화는 그 이유를 료타의 결혼 이전의 가정에서 찾으려 한다. 실제로 분석 심리학에서 기혼 내담자의 경우, 현재의 가정만큼이나 결혼 이전의 가정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료타는 근엄하고 고집이 센 전형적인 우리나라 일일극에 어울리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러한 아버지는 료타를 낳은 친모가 아닌 새로운 여자 밑에서 료타를 자라게 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다. 길러준 어머니에게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 것은 단순히 친모를 향한 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릴 때부터 료타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가정의 구조는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까지 쭉 그러했던 것 일 테고. 사실 료타가 자라난 어린 시절엔 그가 그것을 오답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 속에서 ‘그러한 시대’라는 것은 료타 자신을 합리화 시킬 수단이 되지 못했다. 이에 그는 아마도 자신을 자신이 온전히 키워내 이 오답인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첫 번째 미션으로 생각하며 독립하였을 것이다. 그 미션을 성취한 료타에게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라는 것은 정확히 그의 그림자로 투사된다. 자신의 억눌린 열등한 기억과 정면충돌한 것이다. 

 


 산부인과 간호사의 자백으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녀의 범행 동기는 료타의 가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친자가 아닌 아이들을 계속해서 키우다보니 과거의 일에 죄책감을 느꼈다는 그녀의 자백은 만인의 정답에 가까운 삶에 료타가 실제로 닿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조롱하는 듯 보인다. 료타 자신이 그렇게 되길 무엇보다 바래왔던 삶이었고, 스스로 쟁취해낸 것이었기에.. 그러한 삶을 망친 그 여자에 대해서 료타는 다른 부모들보다도 더욱 분노한다. 그러한 화는 애써 믿고 만들어놓은 삶에 대해서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싶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렇게 그는 무작정 간호사의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것은 그녀가 아니고 그녀의 아들이다. 그 순간, 료타는 그의 그림자와 다시금 정면충돌하게 된다. 니가 뭔대 나서냐는 료타의 차가운 말에 친자도 아닌 그녀의 아들은 우리엄마의 일은 자신에게도 중요하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 아들의 말에 료타는 멍해진다. 피하려고만 했던 것과 맞닥뜨린 후 의도치 않게 그림자가 의식화 된 것이다. 료타는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의 그 여자, 어머니라고 불러야했지만 여태까지 부르지 못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렇게 케이타의 오랜 부재 속에서 료타는 친자와 양자의 개념을 떠나 케이타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길러준 어머니가 가졌을 마음을 처음으로 들여 봤던 것처럼 케이타의 입장과 시선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DSLR로 무심한 아빠를 담아낸 케이타가 찍은 사진은 영화 속에서도 상당히 뭉클하게 연출되어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다. 료타는 케이타에게 용서를 구하러 다시 시골마을로 향한다.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아빠를 보고 케이타는 서운한 듯 화가 난 듯 줄행랑을 친다. 케이타를 뒤따르는 료타는 그동안 자신이 케이타에게 엄격하게 했던 것을 사과하고, 자신도 결국은 케이타와 다름없음을 이야기하려고 애쓴다. 한참을 서로 닿지 않는 수평의 길을 걸으며 용서를 구하는 료타는 마침내 길이 만나는 곳에서 케이타를 끌어안는다. 

 그의 성장담을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과연 온전히 성격을 개조한 것처럼 보여 지는가. 요즘 TV 프로그램에서 유행하고 있는 ‘***가 달라졌어요.’ 같은 식의 놀라운 변화인가. 그렇지 않다. 그에겐 그저 새로운 오답노트가 생겼을 뿐이다. 내가 이전까지 생각했던 문제풀이방식이 달랐음을 알고 뼈아프게 인정하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새 노트를 사서 다시 쓰려는 것이다. 케이타가 료타를 안은 게 아니라, 료타가 케이타를 끌어 안았다. 

 이처럼 영화에서 료타의 변화 속에서 우려되는 한 가지 점은 바로 료타의 시선이다. 케이타가 알 수 없는 미션 속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던 불안한 애정의 시선은 관객을 울렸다. 그렇다면 료타가 케이타와 류세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 무수히 많았던 은밀한 시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케이타는 아직도 이 상황을 미션으로만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이타가 성장한 후, 이 모든 일들을 “역시 그랬던 거군”으로 인식하지 말란 법은 없다. 료타가 케이타를 끌어안은 이유는 내 아들, 케이타는 그렇게는 성장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의 포옹일지도 몰라 소름이 돋았다. (물론 영화의 첫인상에서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제시한 것은 일단은 일방적인 화해의 메시지, 해피 앤딩의 코드가 있다. 하지만 이것에 딴지를 걸만한 연출과 이야기에서의 결점은 제로에 가깝다. 그만큼 영화적 완성도가 높다는 이유다. 해서 영화를 보고 한참이 지나서야 해피 앤딩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해보면.. 누구든 삶을 자신이 생각한 정답대로 살아가지는 못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이건) 가정에서는 몇가지 패턴으로는 규정지을 수 없는 오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소설에서 가족은 대충 봉합한 채 살아가는 존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가정은 구성원 중 가장 센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기준으로 봉합된 채 굴러간다는 생각도 자주했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오답노트가 좋은지는 알지만 귀찮고 막막해서 포기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료타는 사람들이 피해왔던 것을 해내왔던 사람이고, 이번에도 또 해내려고 한다. 우등생답게. 그렇기 때문에 엔딩에서 카메라가 부감으로 떠오르면서 류세이의 집을 비출 때, 이는 영화의 앤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막을 여는 것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료타의 시선을 어떻게 이해하며 케이타가 성장하게 되었을지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더해질 것만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 중 그렇다면 가장 차가운 앤딩은 무엇이었을까?

<걸어도 걸어도>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마저 앤딩은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그런데 유독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일말의 여지가 없는 주인공들의 뒤돌아섬으로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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